빨갛게 빨갛게 살고 싶어라

아티스트 김지연의 부산 집

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 〈건축가가지은집〉 저자) | 사진 박찬우

이토록 ‘빨간 방’. 단지 인테리어 요소가 아니라 삶의 방향, 태도의 중심으로 빨간색을 택했다. 그리고 그 시각적 표면 안에는 빙하처럼 깊은 삶의 시간과 다짐이 담겨 있다. 자신의 작품으로 방을 채울 수 있다는 것도 근사하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붉은색 민화를 그리는 그녀를 처음 본 건 작년 이맘때 조현화랑에서 열린 김종학 화백의 전시와 연계해 진행한 아티스트 토크에서였다.
관객으로 참여한 그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올 블랙.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차려 입은 옷 사이로 팔과 목덜미에 새긴 필기체 문신이 언뜻언뜻 비쳐 보였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인스타그램 친구가 됐는데, 그녀의 집 안은 온통 레드였다.
포인트만 준 것이 아니라 바탕 전체가 레드. 이렇게 강렬하고 개성 넘치는 집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촬영을 다녀온 뒤 많은 생각을 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는 참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과 다짐, 고민과 열망이 녹아 있는가.

사는 사람 이야기

소파를 포함한 가구와 조명도 빨간색을 메인으로. 나의 컬러가 생기면 삶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명쾌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창문 너머로는 해운대 앞바다가 걸린다.
소파를 포함한 가구와 조명도 빨간색을 메인으로. 나의 컬러가 생기면 삶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명쾌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창문 너머로는 해운대 앞바다가 걸린다.

고백하자면 섭외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이 강렬한 레드 하우스가 그저 시각적인 것에 그치면 어쩌나, 촬영팀을 이끌고 부산까지 갔는데 딱히 라이프스타일이라 할 만한 것이 없으면 어쩌나…. 이런 고민을 불식시킨 건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녀의 글이었다. 틈날 때 마다 통밀 식빵을 굽고, 김치 5kg을 담그고, 좋아하는 가수의 LP를 사고, 매달 7~10권 가까이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는 대신 매일의 산책 코스인 해운대 앞바다를 걷고…. 스스로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라고 썼지만, 그 글에서 내가 본 건 어떤 ‘중심’이었다. 관심사와 에너지가 밖으로 뻗어나가는 대신 내 안으로 눈처럼 가만히 쌓이는 삶. 지금의 삶을 사느라 놓치고,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미련도 없는 삶. 충분히 이야기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인스타그램 DM으로 섭외를 마쳤다.
4월의 부산은 청명했다. 해운대에 위치한 아파트에 도착해 전화를 걸자 그녀가 1층으로 한달음에 내려왔다. 오늘도 역시 올 블랙 차림이었다. 집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문 곳은 우리를 환대하는 식탁이었다. 아기자기한 흰색 접시 및 그릇에 담긴 딸기와 쿠키, 그리고 음료. 딸기 위에는 나뭇잎 모양의 녹색 ‘픽’이 귀엽게 꽂혀 있었다. 그녀의 안내로 집 구경을 하고, 애피타이저 같은 스몰 토크를 나누며, 어떤 흐름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지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30여 분이 흘렀을까. 본격적인 이야기가 쏟아졌고, 이내 고양된 기분으로 신나게 타이핑을 했다.

김지연 작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 중 하나는 예술. 모든 방과 벽에 애정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이정표처럼 걸려 있다. 침대 뒤로 보이는 작품은 인간과 동물, 자연과 우주를 자유분방한 구도와 색채로 풀어내는 이두원 작가의 작품.
김지연 작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 중 하나는 예술. 모든 방과 벽에 애정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이정표처럼 걸려 있다. 침대 뒤로 보이는 작품은 인간과 동물, 자연과 우주를 자유분방한 구도와 색채로 풀어내는 이두원 작가의 작품.

카페를 닫고 얻은 것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

그녀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부산 화명동에서 카페를 하던 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카페를 폐업한 순간이었다. 공격적으로,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 잘살고 싶던 30대의 꿈은 대인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나 성실함과 맞닿아 있는 번아웃으로 끝나고 말았다. 대지 1백80평. 마당이 아주 크고, 주차장도 넉넉했던 카페는 그렇게 가뭇없이 과거가 되었다. 카페를 정리한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본인의 아지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사람들한테 너무 치여서 그랬는지 제 동굴이 필요했어요. 남포동 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쇄소 골목 2층에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을 임대했어요.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30만 원인 곳이었는데, 계약할 것 같으니까 월세를 27만 원까지 깎아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곳 인테리어를 혼자 다 했어요. 무언가를 매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페인트를 칠했어요. 그 시간 동안 알게 된 건 제가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제 방식대로, 나의 결대로 더 잘살고 싶었어요. ‘뭔가 변화가 없으면 지금과 똑같이 살게 되겠구나. 나는 더 높은 곳까지 가고 싶은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뭔가 계획이 필요했지요.”
계획에는 당연히 경제적 자유를 위한 노력도 포함됐다. 운도 따랐다. “카페를 정리하고 발리에 갔을 때예요. 남편과 친하게 지내는 형이 있었는데, 문득 ‘코인’을 알려주더라고요. 남편과 친하게 지내는 분이 네 명이었는데, 남편만 빼고 이미 다 투자를 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투자를 해봐도 될까?’ 하고 물으며 ‘1천만 원을 해본다’고 하더라고요. 2017년 5월 22일, 그렇게 처음 코인 투자를 시작했어요.” 눈은 이미 동그래졌고, 얼마나 벌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남편 이대현 씨는 “투자에 관한 온갖 책을 들여다봤어요. 차트 분석법은 물론이고 투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깨지면서 배웠어요. 돈의 흐름과 거시경제를 공부하다 보니 채권과 금, 주식과 ETF 등으로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졌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얼마나 큰돈을 굴리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별로인 질문 같아 참았다. 남편이 전업 투자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때 아내는 부동산을 공부했다. 전세로 묶이는 돈이 아까워 월세로만 살며, 역시 공격적 투자를 이어나갔다. “전세를 살면 내 현실보다 2~3단계 높은 집에 살 수 있잖아요. 매매가의 절반 정도만 내면 되니까요. 그렇게 살다 보면 내 경제 여건이 그 정도라고 착각하게 되는데, 그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장의 욕구만 채우며 살면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믿었고요. 우리에겐 커가는 아이들이 있었고, 저는 계속 잘살고 싶었어요. 우리가 바라는 삶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돈과 욕망, 경제적 성취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고 편안하게 들려주는 부부를 보면서 건강한 기운을 느꼈다. 돈은 모두의 욕망이면서도 비밀이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데, 이 부부의 말에는 허위가 없었다.

민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주요 소재이자 주제가 된 호랑이.
민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주요 소재이자 주제가 된 호랑이.
김지연 작가는 본인을 멀리 데려갈 수 있는 작품에 끌리는 것 같다. 거실 한쪽에 있는 작품은 환상적 리얼리즘을 주제로 작업하는 박영환 작가의 작품.
김지연 작가는 본인을 멀리 데려갈 수 있는 작품에 끌리는
것 같다. 거실 한쪽에 있는 작품은 환상적 리얼리즘을 주제로
작업하는 박영환 작가의 작품.

‘붉은방선인장’에 담긴 꿈과 인생

기사의 흐름을 잡으며 사실 돈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돈은 그야말로 화력이 막강해서 주변의 맥락과 동기를 다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돈은 너무나 중요하고, 이런 내용 없이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건 삶을 소개하지 않고 인테리어만 소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경제적 자유를 획득한 부부는 애초부터 돈 너머에 있던 ‘나의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하나씩 실천해나갔다. 우선 교육.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청소년이 됐는데, 다 홈스쿨링을 해요. 물론 아이들과 상의해서 결정했고요.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가야 한다고 하니까 갔던 것 같아요. 저는 자유롭게 예술을 하고 싶던 사람이었는데, 공교육을 거치면 거칠수록 ‘네모난’ 생각만 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를 낳으면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할 정도로요. 대안학교도 보내보고 사립학교도 보내봤는데, 각자의 네모난 상자가 여전히 강력했어요.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본인들도 원했고요. 둘째는 내심 ‘오빠는 학교를 안 가는데 나만 왜 가야 하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웃음)
학교만 안 갈 뿐 매일의 생활은 규칙과 규율에 따라움직여요. 큰아이가 오전 6시에 일어나고 둘째는 6시 30분에 기상합니다. 저는 6시 50분에 나와 아침을 차리고 7시 30분까지 식사를 마치지요. 각자 정해진 공부와 펜싱을 병행하고요. 뉴스를 보고 토픽을 정해 온 가족이 함께 토론하는 시간도 있고, 사회 이슈에 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핸드폰 사용 시간은 정해져 있고, 틈틈이 산책도 자주 해요. 남편은 아이들의 ‘투자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관리해요. 투자처와 수익률을 엑셀로 만들어 공유하고요. 스무 살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그때 본인들의 ‘돈주머니’를 밑천으로 준다고 이야기하지요.
저희가 클 때만 해도 주식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잖아요.(웃음) 우리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월급을 받으면서 동시에 투자도 하는 삶을 살면 좋겠고, 돈의 속성에 대해서도 알았으면 합니다.”

남편 이대현 씨까지 온 가족이 다 함께. 주식 투자 현황부터 시사 이슈, 산책과 미래 설계까지 모든 것을 촘촘하게 공유한다. 인사만 대충 하고 방으로 휑 들어가지 않고 엄마, 아빠가 인터뷰를 하고 사진작가가 구석구석 촬영하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보던 자녀들이 사랑스러웠다.
남편 이대현 씨까지 온 가족이 다 함께. 주식 투자 현황부터 시사 이슈, 산책과 미래 설계까지 모든 것을 촘촘하게 공유한다. 인사만 대충 하고 방으로 휑 들어가지 않고 엄마, 아빠가 인터뷰를 하고 사진작가가 구석구석 촬영하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보던 자녀들이 사랑스러웠다.


가정 운용의 큰 방향은 역시 자립이다. 아이들 교육은 물론 중요하지만, 본인들의 삶도 그만큼 자주 들여다보며 깊이 설계한다. “카페를 접고 작은 공간을 얻어 들어가면서 저는 계획을 세워야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늘 되새기고 다짐하는데, 이 문신도 그런 마음 챙김의 방법 중 하나예요. 태투tattoo를 30대부터 시작했어요. ‘내 인생에 기억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는 태투를 하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목덜미에도 태투가 하나 있는데, 불가의 사천왕이 금강저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번뇌를 부수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법구가 금강저거든요. 잡생각을 하지 말고, 명료하게 살자는 의미로 새겼습니다. 팔에는 제가 좋아하는 문장을 영어로 새겼는데, 제 삶의 모토이기도 해요. 번역하자면 ‘행복은 다 갖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다’라는 뜻이지요. 일종의 추구미인 셈인데, 팔에 새긴 이유는 자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다른 곳에 그리면 잘 못 보잖아요.”
‘빨간 방’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늘 계획을 세우고 꿈을 꾸는 사람이라 저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빨간색’일 거라 생각해왔어요. 카페를 닫고 ‘동굴’을 얻어 지낼 때도 빨간 방을 만들어 살았지요. 동물로 표현한다면 호랑이인 것 같아서 호랑이와 빨간색을 주제로 그림도 많이 그렸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저를 닮은 식물이 있다면 뭘까?’ 하는 질문이 남았는데, 선인장 같아요. 가까이 가기 힘들지만 생존력이 강하고, 희귀하게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제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붉은방선인장@redroomcactus’인 이유입니다.”

냉장고도 레드. 홈스쿨링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작가는 아침 6시 50분에 주방으로 나와 하루를 시작한다. 그야말로 칼같이 지키는 루틴이자 규율.
냉장고도 레드. 홈스쿨링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작가는 아침 6시 50분에 주방으로 나와 하루를 시작한다. 그야말로 칼같이 지키는 루틴이자 규율.

이제 그녀는 방보다 더 큰 공간을 꿈꾼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정원과 마당을 향한 동경이 점점 짙어져, 기회가 되는 대로 주택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나 자신을 공간화하며 살아왔는데, 마지막 꿈이 그 형체를 온전히 갖는 거예요. 내장재는 빨간 벽돌로 하고 싶고요. 온실이나 마당은 꼭 있으면 좋겠고요. 그간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러니까 더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이제 우리만의 공간을 갖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옷차림이건, 문신이건, 인테리어건, 삶의 방향이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건강하고, 당당한 ‘찐’ 라이프스타일을 만나고 온 부산행이었다.

전문가

강지호 | 아틀리에오 (Atelier O)

아틀리에오(Atelier O)는 건축가 강지호 소장이 운영하는 건축설계 스튜디오로, 장소성과 명료함을 중심에 두고 구조와 재료의 본질을 드러내는 설계를 추구한다. 콘크리트 구조물, 노출 기둥, 수직의 동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각 층을 하나의 방처럼 사용하는 독특한 주거형 스튜디오 구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가파른 대지 조건을 해석해 층층마다 다른 경험을 주는 ‘YUL’ 프로젝트를 비롯해 제주 로스테이, 묵정동 근린생활시설 등 다양한 작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