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를 품은 제주 주택

스테이 어흥어음 대표 이지연·홍승걸 씨 부부의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스테이 어흥어음(@uhheung.uheum)을 운영하는 이지연·홍승걸 씨 부부의 집. 김지희 소장은 부부를 위해 바깥으로는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되 안으로는 곳곳의 자연을 향해 열린 208m2 규모의 안온한 단층 주택을 설계해주었다.

16년 전 제주도로 이주한 이지연·홍승걸 씨 부부가 중산간의 한적한 마을에 스테이를 갖춘 집을 지었다. 감귤밭 옆 비앤비 주택, 애월 바닷가의 집 겸 스테이에 이어 제주에 세 번째로 완성한 집이다. 김오건축사사무소 김지희 소장이 마을의 낮고 고요한 풍경이 되도록 지은 이곳에서 부부의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오롯하게 흐르고 있다.

사는 사람 이야기

가장 안쪽에 자리한 주거동. 주거동과 스테이는 한 부지에 있지만, 작업실을 경계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주거동. 주거동과 스테이는 한 부지에 있지만, 작업실을 경계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둘 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느지막이 일어나요. 볕 좋은 날에는 덱에 나가 요가를 하고, 모닝커피를 마시며 뉴스나 책을 봅니다. 손님들이 체크아웃을 하면 다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요. 그걸로 하루의 공식 일정은 끝납니다. 점심 겸 저녁으로 전날 일찌감치 정해둔 메뉴를 정성껏 요리해 술을 곁들여 먹고, 산책을 다녀오거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스테이 어흥어음을 운영하는 이지연·홍승걸 씨 부부가 들려준 하루 일과다. 커피와 술을 즐기고 집과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삶. 현대판 선비의 풍류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서울에서 IT 기획자로 일하던 부부는 2010년 도시에서의 삶에 안녕을 고하고 제주로 이주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꿈꿔온 이국의 삶을 제주에서 실현하고 싶었다. 타고난 집순이·집돌이이자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는 여러 가능성을 고민한 끝에 스테이를 열기로 했다. 집 겸 스테이를 지어 운영하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팔고, 지역을 옮겨 새 주택을 짓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2015년에는 과수원 로망을 담아 감귤밭 옆 붉은 벽돌 주택을, 2020년에는 바닷가 바로 앞에 모던한 콘크리트 주택을 지어 성공적으로 스테이를 운영했고, 지난해 세 번째 스테이 ‘어흥어음’을 열기에 이르렀다.
“저희에게는 집 짓기가 재미난 프로젝트였어요. 스테이는 일종의 단기 임대잖아요. 노동과 자본을 절반씩
판매한다는 개념이 저희의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았습니다.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저희도 새로운 곳에서 살아볼 수 있으니까요. 둘 다 워낙 집을 좋아하는 터라 오래 머물고 싶은 집의 장면을 객실에 녹이고, 손님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뻤어요. 스테이를 운영하다 보면 아무리 고민해 지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한 부분이 보여요. 3~4년 정도가 지루하지 않게 일하고, 주택 가치도 떨어지지 않는 적정 기간이라 판단했습니다.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며 나름의 전략을 세운 거죠.”
두 채의 스테이를 운영하며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미처 실현하지 못한 로망은 새로운 집을 이루는 뼈대가 되었다. 밭도 바다도 아닌 중산간 지역을 택한 것, 스테이와 집을 분리한 것, 다채로운 외부 공간을 마련한 것은 모두 그간의 경험이 빚어낸 결과다.

부부를 닮은 느긋한 풍경의 스테이. 두 사람이 조용히 머무르다 가기에 딱 좋은 규모와 분위기다. 유리블록 벽은 이곳의 포인트이자 빛을 아낌없이 들여주는 존재.
부부를 닮은 느긋한 풍경의 스테이. 두 사람이 조용히 머무르다 가기에 딱 좋은 규모와 분위기다. 유리블록 벽은 이곳의 포인트이자 빛을 아낌없이 들여주는 존재.

집으로 덕업일치를 이룬 부부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탄생한 이곳에서 또 다른 일상을 꾸려가는 중이다. 이지연 씨는 처음 마련한 작업실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우며 오래 품어온 작가의 꿈을 준비하고 있다. 홍승걸 씨는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완벽에 가깝게 반영한 공간을 경험하며 다음 집에 대한 상상을 키워나간다. 인터뷰 중에도 다음에는 야외에서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나 모듈러 주택을 만들어보고 싶어 레퍼런스를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들에게 집 짓기는 변화하는 삶의 방향성을 동기화하는 방법이자 가장 즐거운 업이다. 두 사람만의 리듬대로 지은 어흥어음에서 부부는 매일의 풍류를 누리며, 집과 닮은 느긋한 삶의 박자를 이어가고 있다.

고친 사람 이야기

서로의 경계가 풍경이 되는 집

설계를 맡은 김오건축사사무소 김지희 소장은 부부와 마찬가지로 10년 전 제주로 이주했다. 비슷비슷한 아파트가 아닌 저마다의 삶을 담는 집 짓기를 꿈꾸며 제주에 첫 사무실을 열었고, 장소와 긴밀하게 관계 맺는 건축을 작업해왔다. 김지희 소장은 이곳 또한 화려하고 눈에 띄기보다는 단정하고 나지막한 형태로 마을의 풍경을 이루는 집을 제안했다. 그리고 부부가 세밀하게 요청한 조건들을 조율하며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집에 부부의 취향이 가득 담겼다면, 스테이는 투숙객이 편안하게 머물면서도 곳곳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원을 조망하는 툇마루와 평상, 화롯대와 수 공간은 그러한 의도를 반영한 결과다.
집에 부부의 취향이 가득 담겼다면, 스테이는 투숙객이 편안하게 머물면서도 곳곳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원을 조망하는 툇마루와 평상, 화롯대와 수 공간은 그러한 의도를 반영한 결과다.

이 집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주거 공간과 스테이가 한 대지 안에 함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두 번의 집 실험을 거치며 손님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주거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던 부부는 이번 집을 의뢰하면서 프라이버시를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았다.
김지희 소장은 좁고 기다란 땅의 형태를 활용해 집과 스테이를 분리하고, 더 나아가 집을 작업실과 주거동으로 한번 더 나누었다. 그리고 세 개의 채를 스테이-작업실-주거동 순서로 배치했다. 사이에 작업실을 둔 덕분에 따로 담을 쌓지 않고도 프라이버시를 확실히 보호하고, 양쪽에 독립된 마당까지 갖추게 되었다.
“루빈의 꽃병은 보는 방식에 따라 꽃병이 되기도, 사람의 얼굴이 되기도 하잖아요. 이곳 또한 같은 대지에 있지만 집주인과 투숙객이 각자의 장소를 독립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주거동과 스테이가 서로의 전경과 배경이 되고자 했습니다.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다른 장소처럼 보이도록 한 거죠. 벽을 따로 세우는 대신 작업실을 사이에 두어 건물의 외피를 경계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작업실이 자리한 덕분에 그 사이로 외부 공간이 생기면서 바깥으로는 닫혀 있지만, 안으로는 열린 집이 되었습니다. 바깥에서 볼 때는 위요감이 느껴지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다른 장면으로 확장되는 것이 이곳의 매력입니다.”

부부의 작업실. 이지연 씨는 책도 읽고 스테인드글라스를 작업하기도 하며 조금씩 이곳의 쓸모를 찾아가고 있다.
부부의 작업실. 이지연 씨는 책도 읽고 스테인드글라스를 작업하기도 하며 조금씩 이곳의 쓸모를 찾아가고 있다.

유유자적한 삶은 부부를 닮은 집으로부터

부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주거 공간에 특히 많은 공을 들였다. 제주에서 세 채의 주택을 짓는 동안 스테이보다 주거 공간이 더 넓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두 사람의 목표는 하루 종일 있어도 질리지 않는 집. 김지희 소장은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최대한 담고, 외부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 공간감을 풍성하게 느끼는 집으로 그 바람에 화답했다. 작업실과 주거동을 분리하며 생긴 마당에는 깊은 처마와 이어지는 너른 덱을 계획하고, 욕실과 연결된 마당에는 야외 샤워실을 설치했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방은 최소한의 크기로 마련한 대신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인 욕실은 넓게 조성하고, 각각을 위한 세면대를 두었다. 거실 한쪽에는 평상을 두고 통창을 설치해 마당을 향해 활짝 열어놓았다. 덕분에 부부는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늘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고 있다.주거동이 건축주의 일상을 담은 공간이라면, 스테이는 같은 대지 안에서 투숙객이 독립적으로 머무를 수 있도록 새롭게 구성한 또 하나의 장소다. 김지희 소장은 건축주의 무드를 자연스럽게 담으면서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요소를 더했다.
“스테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어떻게 하면 공간이 더 확장돼 보일까’였어요. 넓지 않은 공간에 임팩트를 주기 위해 많은 장면을 넣어야겠다 생각했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단’이었습니다. 침실은 낮은 계단을 올라 진입하고, 거실과 마당에는 평상을 두어 오르내리는 리듬감을 줬어요. 같은 높이라도 집 안의 마루에 앉아 있을 때와 대청에 걸터앉아 바람을 맞고 물 소리를 듣는 경험은 다르잖아요. 이처럼 시점과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보통의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을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평평한 창 대신 코너 창을 계획해 시선이 막힘없이 뻗어나가도록 한 것, 샤워실 벽과 천장 일부를 유리블록으로 마감해 야외에서 샤워하는 듯한 느낌을 낸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어요.”

김지희 소장이 부부의 취향을 반영해 계획한 야외 샤워실. 한겨울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사용하는 부부의 최애 공간이다.
김지희 소장이 부부의 취향을 반영해 계획한 야외 샤워실. 한겨울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사용하는 부부의 최애 공간이다.
스테이 샤워실. 벽은 물론 천장 일부까지 유리블록으로 마감해 독특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스테이 샤워실. 벽은 물론 천장 일부까지 유리블록으로 마감해 독특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전문가

김지희 소장 | ㈜김오건축사사무소

김지희 소장은 ㈜김오건축사사무소 대표로, 장소와 거주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건축을 다룬다. 아산의학관 레노베이션 및 곶자왈주택, Rhythm(音) 등을 작업했으며, AIA South Korea Design Awards(2025),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2025, 2024)을 수상했다. 제주현대미술관 〈제주체濟州體 김석윤 건축전〉의 큐레이터로 전시를 기획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공공 건축가 및 박물관·미술관 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지역 건축의 공공적 역할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kim-o.kr